- 성장의 공식이 뒤집히다
한때 기업 성장의 지표는 ‘더 크고 더 많은 것’이었다. 더 많은 직원, 더 넓은 사무실, 더 막대한 자본, 이것이 성장의 공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공식은 무너지고 있다. OpenAI 의 시가총액은 약 222조 원에 이르지만, 직원 수는 770명에 불과하다. 이는 1인당 무려 3,300억 원의 가치를 창출하는 셈이다. 이제 거대함은 더 이상 강점이 아니라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 조직이 커질수록 복잡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그 복잡성을 관리하는 데 엄청남 비용이 든다. 피터 틸이 '제로투원'에서 말한 독점의 논리도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독점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명제보다, 무거워지면 죽는다는 명제가 더 설득력을 얻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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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가 가져온 진짜 변화: 지적 노동의 민주화
과거의 기술 혁명은 대체로 육체노동의 영역을 건드렸다. 기중기가 인부를 대체하고, 컨베이어 벨트가 공정을 자동화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인공지능은 지적 노동 영역에서 비약적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글을 쓰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영역이 기계의 손에 넘어가기 시작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의 범용성이다. 첨단 산업이든 전통 산업이든 가리지 않고 지능화의 수혜가 퍼져나간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잘라버린 알렉산드로스처럼, AI는 기존의 순차적 문제 해결 방식 자체를 무효화한다. 앞으로 10년 후 노벨상 수상자는 인공지능이 될 것이고, 수상 주기는 5분마다가 될 것이라는 농담이 회자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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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한 소수의 등장
기술의 발전은 협력의 점성을 옅게 만든다. 예전에는 여럿이 모여야 가능했던 일을 이제 한 사람이 해낸다. AI로 무장한 개인은 극단적으로 증강된다. 마치 모빌 수트를 입은 조종사처럼, 한 사람이 예전 집단 전체의 산출량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재능 있는 개인이 더 많은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조직의 위상은 자연스럽게 축소된다. 경량문명에서 '경(輕)'은 가벼움을 뜻하고, 그 가벼움은 곧 이동성과 연결의 유연성을 의미한다. 필요에 따라 빠르게 뭉치고 흩어질 수 있는 힘, 이것이 경량문명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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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 추격자에서 빠른 전환자로
립프로깅(leapfrogg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하나씩 단계를 밟아가기보다 개구리 점프하듯 첨단 기법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선발주자를 빠르게 추격하는 것이 후발주자의 전략이었다. 이제는 빠른 추격자가 아닌 빠른 전환자의 시대가 열린다. 기존 사업 방식은 막대한 자본, 사무실과 설비, 직원 급여와 복지, 재고와 창고, 정보시스템까지 고정비용의 덩어리였다. 새로운 사업 방식은 시스템 사용량 기반의 종량제 과금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진입장벽이 낮아진 만큼 전환의 속도가 생존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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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단계가 축약된다
사무직이라고 불리는 업무는 결국 자동화로 대체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은 일의 소멸이 아니라 단계의 축약이다. 손으로 옮기던 돌을 기중기로 옮기게 됐을 때, 일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같은 규모의 일을 위해 투입되는 인력의 총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을 뿐이다. 에이전트 시스템이 부동산 매매를 대행하고, 항공권과 호텔을 탐색해 예약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에이전트들의 에이전트가 등장하면, 인간 관리자는 한때 인류사에 존재했던 직업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결국 소수의 전문가에게 필요한 덕목은 빠르게 전체 업무를 이해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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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정의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된다
묻고 추론하고 해결해나가는 능력이 지능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문제를 정해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풀어나가는 힘이다. 이것이 고등 지능을 가진 개체의 장점이다. AI가 대부분의 실행을 대신하게 될 때, 인간에게 남는 고유 영역은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능력이다. 지금의 AI는 앞으로 사용하게 될 최악의 AI라는 말이 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그 발전 속도에 맞춰 인간의 역할 정의도 계속 갱신되어야 한다. 배움의 재정의가 필요하다. 앞으로 공부하라는 말은 청소년이 아니라 중장년이 더 많이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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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와 미의 경쟁, 그리고 진정성
디지털 기술이 모든 사람에게 마법의 붓을 쥐여줬다. 과거에는 예술가와 장인들만이 아름다운 것을 창조할 수 있었지만, 이제 누구나 고품질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역설적으로 허술하고 허투루 된 것이 모두 사라지는 세상이 됐다. 모두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자, 소비자의 눈높이는 아름다움을 넘어 진정성으로 향한다. 창립자의 전문 이력과 평생의 족적까지 확인할 만큼 진실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경량문명은 시작이 수월하기에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하기에 더욱 깊어져야 하는 깊이를 다투는 문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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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눈
일본은 골목을 판다.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배경이 된 계단이 성지순례 장소가 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가 수원 행궁 주변을 관광지로 만들었다. 문화는 일상적인 삶의 장면도 멋진 예술로 승화시키는 마법을 보여준다. 수저 서랍, 버스 정류장의 온열 벤치, 뚜껑이 열려서 옷을 담을 수 있는 의자, 식당의 일회용 치마. 한국인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외부인의 시선에서는 신문물이다. 늘 우리와 함께 있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 익숙한 것을 다시 바라보는 낯선 시선에서 새로운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나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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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성을 넘어 문화적 맥락으로 소비하다
문화적 배경이 향후 브랜드의 성공요인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단지 눈에 보이는 미적 요소 외에 스토리와 역사, 그 문화적 배경이 중요해졌다. 민화 호작도를 보라. 없던 것을 그냥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전통 위에 새로운 창작이 더해졌다. 고유성에 진정성이 더해진 결과물에 찬사가 쏟아진 것이다. 진정한 가치는 물건 위에 놓인 상징에서 비롯된다. 서사에 담긴 철학은 복제할 수 없다. 궁리, 상징, 서사. 이 세 가지가 경량문명 시대 브랜드의 핵심 자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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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량문명의 가장 유망한 산업: 외로움을 돕는 일
경량문명의 시대는 모두가 전문가를 자처하며 나름의 경력과 능력을 주장하는 사회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스레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영향력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 각자가 자신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긴 글을 친절하게 공유하는 영업의 공간이 됐다. 기능보다 정서로 심화된 경험은 더 짙은 교류를 만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연결이 늘어날수록 고독도 깊어진다. 경량문명의 가장 유망한 산업은 외로움을 돕는 산업이 아닐까. 기존 문명의 도래는 기존 문명의 원칙을 무효화하기에, 이전 문명의 구성원들은 신생아보다 더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행화(現行化), 현재 기준에 맞게 스스로를 업데이트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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